난소공을 읽고

뫼비우스의 띠.

중학교 수학시간에 우연히 한번 듣고만(그때는 거기에 어떤 큰 가치를 부여치는 않

았다)그 단어가 이제는 어떤 진리의 반영과 함께 큰 사색과 갈등의 원인이 되버린

것 같다.

낯설지 않기에 무심히 지나쳐 버린 이 책이 낯설지 않기에 무지해지고 무감각해지

는 이 현실과 하나의 조응을 이루며, 또 약간의 강제와 약간의 관심에 의한 이 책의

읽음이 이 허상일지 모를 현실에 대한 관심과 과거의 아집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

것은 나에게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수 없다.

で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と이라는 표제가 붙은 이 소설집은 그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상이하게 우리 시대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으며 내용 또한 우리의 현실이

며 이웃의 일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더욱 무뎌진,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난 일 이 되버린것 같은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곡면에서 존재하는 우리이기에, 거기에 안과 겉은 존재치 않기에 우리

의 현실인식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무엇일까?

현실을 하나의 허상으로 간주 할때 그에 대한 반동으로 허무주의적 체념이나 종교적

극복이 나타나듯이 현실은 항상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거기에서 하나

의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고 항상 우리들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 부여

를 하고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산업화 시대의 소외된

도시 근로자의 아픔을 가진 자의 횡포와 없는 자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일말의 위기

감을 느꼈을 작가가 현실 인식의 한 작은 소재로 그리고 있다.

이 작가의 현실 인식을 잘 드러낼 단서로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해 보자.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한 쪽면만 갖는 곡면이며 어떻게 보면

상상속에서나 그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현실을 추상화 할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로 수학 교사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생각

해 보면,で굴뚝と과 같이 어둡다고 느껴지는 이 현실에서 얼굴이 깨끗한 사람과 더러

운 사람이 따로 있을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현실 세계에는 얼굴이 깨끗한 사람과 더

러운 사람이 함께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또 깨끗한 사람이 더러운 사람에게서 자신

을 느끼거나 더러운 사람이 깨끗한 사람에게서 자신을 느끼는 일들은 오늘날 소외

계층과 소위 있는 자들이 현실 속에 공존하면서 서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하지만 뫼비우스의 띠가 의미하는 바는 이 두 계층 사이에서의 진

정한 안과 겉은 없으며 지금의 이 현실 세계는 で안과 겉을 구별할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기묘한 세계と라는 것이다.

또 で클라인씨의 병と에서의 현실은 하나의 열려진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갇혔

다는 착각을 갖지만 그 느낌이 현실에서의 우리의 삶이라면 그것이 의미를 갖듯이

허상일지 모를 현실은 실재하며 거기서 우리는 많은 모순과 어려움을 발견하게 된

다.

하지만 で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と에서 난장이인 영희 아버지가 달나라 즉 사랑

의 세계를 갈망하듯 난장이에게도 허우적거려야 할 현실과 대조되는 소망의 세계가

있고 또 허상일지 모를 세계가 존재할 수 있듯이 이 세계는 실재로 존재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의 도피이여서는 안되며 현실의 묵인이여서도 안된다.강제 철거

민이 되 버린 그들의 상황과 현실 인식이 비록 여러 문학적 기교로 인해 때론 서정

성을 동반하면서 때론 이상과 꿈을 수반하면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그런 여러 감정

과 어울려 철저한 우리의 현실인식으로 다가와야 한다.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표면적으로는 물질적 경제적 풍요와 함께 많은 문명의 이

기가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있으며 바야흐로 선진국의 대열에 서려하고 있다.

소위 많은 민주적 제도 아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강조되며 홍익인간의 이념이 헌

법의 근간을 이루며 자본 주의의 뿌리위에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며 자신이 일한 만

큼 자신의 몫을 챙길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이 사회는 어떠한가? 가진자는 온갖 사치품에 자신을 살

찌우며 최대한의 이윤을 위해 가난한 자의 피를 쥐어 짠다.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 환경 아래서 생계비도 안되는 돈을 받고 하루 하루를 지탱해 나간다.지금도 전

국 각지에 빈민촌이 존재하며 대재벌의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폐수에 많은 사

람의 속은 상해간다.수서 비리등 많은 부패와 비리가 존재하며 투기로 노동자가 몇

십년을 일해도 벌지 못할 돈을 앉아서 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계속 주

지 할 수 있을까?

그런 현실의 현실성을 나는 이 소설에서 정말 가슴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비전이 보인것도 아니며 어떤 이데올로기적 해결책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그

갖지 못하고 항상 절망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서,그들의 눈물에서,그들의 이상

어린 꿈에서 강한 현실에의 의식과 인간적 동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그리던,그 난장이가 그리던 세계는 어떠했던가?

ぢ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 꽃줄기에

까지 머물게 한다っ

바로 이런 세계다.우리가 바라는 세계다.지금의 이 현실이 허상이고 뫼비우스의 띠

라면 우리가 바라는 이 세계도 현실이 될 수 있고 실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절실하게 느낄때이다.우리가 한번쯤 고개를 돌려 이

웃을 바라볼 때이다.이것은 낙관도 아니고 실현 불가능한 사변도 아니다.

현실의 고발과 함께 거기에 수반한 역사의식, 또한 강한 한 인간에의 정.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나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