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백과

中國小史(2)

임 도현

그후부터가 戰國時代로의 돌입인데,戰國 七雄이라하면 齊.秦.燕.趙.魏.韓.楚를 말한다. 그 중 秦나라가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는데,거기에 대항하기위한 방법으로 대 웅변가인 蘇秦의 合從策이 나와 蘇秦은 6國의 宰相이 되고 6國은 서로 힘을 모으게 된다.그러나 같은 스승밑에서 배운 張儀의 언변에 의해 6國의 聯合은 깨어지고 秦은 먼저 周를 멸하고,차례로 6국을 멸하게 된다.먼저 韓이 망하고 다음에 趙,魏,楚,燕,齊순으로 秦王 정,바로 秦始皇에게 망하고 만다.

이 春秋 戰國시대는 齊子白家라고 하는 말이나올 정도로 온갖 思想이 탄생한 시대이다. 孔子,孟子의 儒家. 老子,莊子의 道家. 상앙, 李斯의 法家. 孫子,吳子,韓非子의 兵家.墨子의 墨家. 蘇秦,張儀로 대표되는 遊稅客까지 온갖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그 시대의 가장 큰 목적이 富國 强兵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을 통일한 秦始皇은 먼저 6국의 무기를 모두 수거하여 鐵製像을 만들고 아방궁이라는 거대한 궁궐을 지었다.

또한 儒生들이 자신의 정치를 비판하는 것을 싫어하여 모든 책을 불사르고 儒生들을 탄압하였다.그리고 6국의 長城들을 모두 잇는 萬里長城의 築城에 들어가 백성들의 노동력을 무차별 착취하게 이른다. 그러다 결국 자신도 병으로 죽기에 이르는 데, 2대신하인 李斯와 趙高에게 태자 부소를 맡긴다.이 태자 부소는 진시황에게 여러 차례 충직한 간언을 하다 만리장성 축조 관리자로 쫓김을 당했던 유덕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趙高는 똑똑한 황제가 나올 경우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의식, 이사를 꼬셔서 부소에게는 진시황의 명이라 하여 사약을 내리고 둘째아들을 옹립하기에 이른다.

이 秦二世皇帝는 우둔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권력은 조고에게로 넘어가고 각지에서는 반란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반란세력은 楚의 부흥을 내세우는 項梁(그의 조카가 역발산 기개세로 유명한 項羽이다)과 葁萬里長城축조를 위해 장정들을 인솔하고 가다 중도에서 패현을 중심으로 반기를 든 劉邦인데 서로 합류하여 진나라 수도로 진격하게 된다.

그러다 項梁이 죽고 項羽와 劉邦의 2대세력을 형성하는 데 초기에는 項羽의 歲力이 훨씬 강대하였다.

진나라 수도 咸壤으로 진격하기에 앞서 항량의 무리들은 楚나라 왕족의 후손을 찾아서 義帝를 세우고 새로 합류한 劉邦의 무리와 방향을 두갈래로 나눈다.

또 義帝가 명하기를 먼저 함양을 함락시키는 자를 王으로 봉한다 하였다.

마침내 함양진격에서 유방이 먼저 함양을 점령, 3장(章)만의 법으로 백성을 편안히 하고 살륙을 금했으며,모든 창고를 봉쇄했다.

뒤늦게 도착한 項羽는 이를 시기하고 鴻門의 宴(물론 劉邦을 죽이기 위한)을 연다.

이를 무사히 탈출한 劉邦은 훗날을 도모하는 骕에서 項羽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蜀땅의 漢왕이 되어 蜀으로 들어가는 데 이 때 촉땅은 하나의 불모지나 다름없었고,중원으로 나오는 길도 제한되어 있었다. 뒤늦게 咸壤으로 들어간 項羽는 백성을 괴롭힐 뿐 아니라, 義帝를 죽이고 帝位에 오른다. (朝鮮시대 때 黨諍을 유발시킨 弔義祭文은 바로 이 義帝를 기린 것이다. 조선조 연산군때의 사화를 기억하시는지? 드라마 장녹수의 최근 내용이다.) 때를 기다리던 劉邦은 楚에서 제대로 登用이 안되고 무시당하던 韓信을 등용하여 漢나라 군사가 처들어 오는 것을 지키던 옛 秦의 세 장수를 쳐 부수고 項羽가 있는 수도 咸陽으로 쳐들어간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