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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小史(3)

임 도현

하지만 항우(項羽)의 용맹과 그 부하 장수들의 충정으로 유방(劉邦)은 고전을 거듭하나 결국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새로이 한(漢)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 마지막 전투를 잠시 소개하면, 대패를 당한 항우의 초(楚)군은 어느 산에서 포위되었는데 어느덧 밤이 된 후 저 멀리 주위의 산에서 초나라 민요의 아름다운 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에 향수를 일으킨 초나라 병사들은 하나둘씩 대오를 이탈하여 결국 항우는 홀로 고립되어 쫓기다 자결을 하고 만다. (물론 이것은 한신의 계략이었다)

여기서 나온 한자 성어가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이고 죽음을 같이한 그의 애첩 우희와 항우의 사랑을 다룬 것이 중국의 고전 경극인 패왕별희(覇王)이다.(보통 항우를 초패왕(楚覇王)이라 부르고 유방은 한고조(漢高祖)라 불린다)

한고조는 소하가 승상으로서 나라안을 잘 보살피고, 장량이 재사로서 큰 지혜를 발휘하였으며(보통 장자방이라 불린다) 한신이 군을 지략으로 이끌어 감으로써 한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운 한나라는 무제(武帝)때 전성기를 이루는데 장건을 서역에 파견하여 실크로드를 개척하였고 또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편찬하는등 역사저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큰 획을 긋는다.

하지만 이런 한나라도 뒤에 외척 왕망이 제위를 찬탈하고 신을 세움으로써 그 운을 다하는데 왕망이 신을 세운 뒤에는 이미 부패할대로 부패한 한나라를 백성들은 별로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망의 새로운 개혁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왕망 자신도 점점 난폭해지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이 때 한나라 왕족의 한 후예가 새로이 이 혼란을 수습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바로 광무제(光武帝)이며 이 때부터를 후한(後漢)시대(또는 동한(東漢))이라 일컫는다.

한때 번성하던 후한도 말기에 환관의 발호와 황건적의 난으로 다시 한번 혼란의 시대를 겪는다. 난을 수습키 위해 각 지역의 영웅 호걸들이 일어나나 동탁이 먼저 황제를 등에 업고 세상을 호령하기 시작하여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삼국지(三國志)의 무대가 펼쳐진다. 초기의 많은 영웅들은 반복된 역사의 흐름속에서 사라져 가고 결국은 제갈공명이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때 제시한 삼국 정립의 대계대로 이루어져 간다. 즉 조조의 위(魏)와 유비의 한(漢), 손권의 오(吳)가 자국의 운명을 건 한판승부에 뛰어든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桃園決義), 위(魏)와 오(吳)의 적벽대전, 방통의 죽음(낙봉파), 장판교의 장비, 계륵의 고사, 관우의 오관 탈출과 형주 싸움에서의 죽음, 장비의 덧없는 죽음과 백제성에서의 유비의 최후, 구구절절 충정이 어린 공명의 출사표, 위나라의 새로운 영웅 사마중달,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라는 고사를 만들어낸 오장원의 별, 이 모든 것을 역사의 자취로 남기며 역사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데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