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백과

中國小史(5)

임 도현(90)

수국공(隋國公)에서 수왕(隋王)이 된 다음해에 수나라를 세운 수왕조의 창립자 문제는 그 때까지의 악정을 과감히 개혁하고 북쪽으로 호족들을, 남쪽으로 남조 최후의 왕조 陳을 물리침으로서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유능한 군주로서 강력한 중앙 집권제의 확립과 지방 행정의 간소화를 실시하고 군사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여 병농일치제를 실시하였다. 또 경제면에서는 요역의 경감과 세금을 감소시킴으로서 문제의 선정이 실시된 지 20 수년 후에는 국가가 안정되고 번영하여 「개황의 치」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조급한 중앙 집권제의 강화로 남쪽에서는 반항 운동이 일어나고 안으로는 수왕실 자체에도 내분이 일어났다. 604년 문제가 병상에 눕게 되자 황태자 양광이 문제를 시해하고 수나라의 2대 황제가 되니 이가 수양제이다.

양제는 제위에 오르자 동도의 건설과 대운하의 개설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렀으며 인공산의 축조와 이궁의 축조 공사, 몇 만척에 달하는 용선의 건조, 만리 장성의 축조 공사 등으로 수백만의 인부가 동원되어 요역은 일종의 재난으로 화하였다. 게다가 3번의 고구려 원정 실패는 급기야 각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각지에서 호족과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웅이 할거하는 가운데 양현감, 이밀, 이연등이 군사를 일으켰다. 618년 양제는 강도에서 친위군에게 시해되고 그의 손자 공제가 낙양에서 자립하였으나 619년 반란 세력인 왕세충에게 제위를 빼앗겼다. 한편 장안을 함락시킨 이연은 공제의 아우를 황제로 옹립하였다가 그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고 나라 이름을 당(唐)이라 하니 수나라는 겨우 3대 39년만에 멸망하였다.

당의 고조 이연이 당을 세움에 있어 그의 둘째 아들 이세민의 활약이 컸는데 당나라 건국후 이세민의 인망을 질투한 태자 건성이 세민을 제거하려는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세민은 기선을 제압하여 현무문에서 태자 건성과 동생 원길을 제거하였다. (조선조 초의 이방원의 경우와 거의 같다)

그후 고조는 세민을 태자로 세우고 그로부터 2개월후 제위를 세민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태상황으로 은퇴하였다. 제위에 오른 태종 이세민은 안으로 중앙 집권제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영토를 확장하여 당왕조 300년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또한 균전제를 바탕으로 한 조 용 조의 세제와 부병제의 실시, 과거 제도의 확립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부흥하여 역사상 선정으로 일컬어지는 「정관의 치」를 이룩하였다. 제3대 고종의 집권 후부터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가 고종을 대신하여 전횡하다가 690년에는 스스로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주(周)라 칭하였다. (이때의 자세한 내용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경향신문의 연재소설 '낙양성의 봄'을 참조하실 것..) 그러나 705년 측천 무후의 정권은 물러나고 당왕조는 다시 회복되었으나 중종의 황후 위씨의 전횡으로 정치는 다시 문란하였다. 이때 즉위한 현종은 정치를 개혁하여 국력의 충실을 기하니 당왕조는 다시 중흥되어 「개원의 치」를 이룬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