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년 브장송 출생으로 왕당파 출신의 어머니와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인 아버지 아래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전쟁지를 전전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부모의 사이는 원만하지 못하였고 1812년부터 어머니는 가족을 데리고 파리에 정주하여, 1814년부터 위고는 기숙학교 교육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는 군인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그는 문학에 흥미를 갖고 제2의 F.R.샤토브리앙을 꿈꾸었다.
181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콩쿠르에서, 이어 1819년 투르즈의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그의 시(詩)가 입상하였다. 그 해 형 아베르와 함께 낭만주의 운동에 공헌한 잡지 《Conservateur Litteraire》를 창간하게 된다.

1822년 어릴 적 친구였던 아델 푸세와 결혼하였고, 같은 해 《오드, 기타 Odes et posies diverses》를 냈는데, 이 작품으로 루이 18세와 가까워져 연금을 받게 되었으며, 이 무렵의 위고는 왕당파이자 가톨릭적이었다.

이 밖에도 시는 《오드와 발라드 Odes et ballades (1826) 《동방시집 Les Orientales》(1829), 소설《아이슬란드의 한 Han d'Islande》(1823), 희곡 《크롬웰 Cromwell》(1827) 등을 발표하였다.

처음에 노디에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낭만주의자들이, 이 무렵부터 그를 중심으로 하여 모여 들어서 이른바 '세나클(클럽)'을 이루어, 사실상 낭만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한 의미로 《크롬웰》의 서문은 낭만주의 문학의 선언이라 할 만큼, 그는 고전주의를 비판하여, '삼일치(三一致)의 법칙' 중에서 시간과 장소의 일치는 너무나 구차한 구속이라고 주장하였다.

1830년에는 희곡 《에르나니 Hernani》의 상연을 계기로 고전주의 지지파와 격렬한 투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1833년 애처(愛妻) 아델과 친구 상트 부브와의 추문으로 크게 상심하던 중 여배우 J.들루에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1830년 7월혁명이 일어날 무렵부터 위고는 인도주의와 자유주의로 기울어, 시(詩) 《가을의 나뭇잎 Les Feuilles d'automne》(1831) 《황혼의 노래 》(1835) 《마음의 소리 》(1837) 《빛과 그림자 Les Rayons et les ombres》(1840)와 희곡 《마리옹 드 로름 Marion de Lorme》(1831) 《왕은 즐긴다 Le Roi s'amuse》(1832) 《뤼 블라 Ruy Blas》(1838) 《뷔르그라브 Les Burgraves》(1843) 등을 발표하였다. 특히 소설에는 불후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1831)가 있다. 1843년 딸 레오포르딘이 남편과 더불어 센강에서 익사하자, 비탄에 빠져 그로부터 약 10년간 문필을 중단하고 정치에 관심을 쏟았다.

1848년의 2월혁명 이후는 공화주의에 기울어, 1851년에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제정(帝政)을 수립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 결국 망명의 길에 올라, 벨기에를 거쳐 영국해협의 저지섬과 간디섬에서의 19년간에 걸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나폴레옹 3세를 비난하는 《징벌시집(懲罰詩集) 》(1853), 딸의 추억과 철학사상을 노래한《정관시집(靜觀詩集) Les Contemplations》(1856), 인류의 진보를 노래한 서사 《여러 세기의 전설 La Legende des siecles》(1859),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1862) 《바다의 노동자 Les Travailleurs de la mer》(1866) 《웃는 사나이 L'Homme qui rit》(1869) 등을 발표하였다.
그에게는 이 망명기간이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시기였으며, 파리에 돌아온 이후에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이 이 시기에 집필된 것이라고 한다.

1885년 그가 죽자 국민적인 대시인으로 추앙되어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팡테옹에 묻혔다.

위고의 생활과 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웅대하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이다. 다른 낭만파 시인에게서 볼 수 있는 감상적인 요소는 그의 작품에서는 부수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생애의 반은 인류의 무한한 진보, 이상주의 사회건설 등의 낙관적인 신념으로 일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