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도윤 (오페라의 유령 제작총감독, 제미로 공동대표)

1.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맘껏 누려라
 

1.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맘껏 누려라

살아오면서 누구나 흠모의 대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대상이란 닮고 싶은 사람 혹은 자신의 이상형을 말하기도 한다. 10대들은 연예스타를, 가수 지망생은 이 시대 최고의 가수를,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뚱뚱한 사람은 날씬한 사람을… 등등. 그 흠모의 대상에 자신의 꿈이나 이상을 맞추어 놓고 그와 비슷하게 행동을 하거나 그와 비슷한 차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를 닮아 있거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꿈'이라고 말해보자.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니?"하면서 흔히 말하는 '장래희망'을 물어보았다. 그때 나는 자신 있게 "가수(엘비스 프레슬리 같이 몸을 마구 흔들며 노래하는)"라고 하곤 했다.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불쑥 내뱉은 한마디였다. 지금 친구들은 아마 그런 나를 보며 "쟤가 어떻게 안무가가 돼?"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시종일관 뮤지컬을 꿈꾸어왔고, 뮤지컬을 흠모해 오면서 그를 닮아가는 준비를 해왔다. 철없이 한마디 내뱉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발이 되어서 내 꿈은 뮤지컬 배우에서 안무가로, 안무가에서 뮤지컬 제작자로 변신을 해왔다. 현재 나는 내 꿈의 중심부에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

뮤지컬이 좋아서 뮤지컬과 함께 살아온 지 20년, 나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었다. 사람들이 또 다시 "너가 그걸 어떻게 해?" 라고 의아해 할 꿈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와, 좋은 생각이야"라고 말하기 보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대 반 걱정 반의 의견을 보여준 것이 다반사였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꿈이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다.

'오페라의 유령'이라 하면 뮤지컬에 문외한인 사람도 한 번은 들어서 알고 있을 만큼 세계적인 뮤지컬이다. 그 유명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 작곡의 뮤지컬 넘버는 들을수록 심금을 파고드는 애잔함과 웅장함을 함께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미스 사이공', '캣츠', '레 미제라블' 등을 제작해 세계 뮤지컬 시장에 내놓은 매킨토시 제작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94년 브로드웨이에서 직접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나의 생각은 180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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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부르는 노래와 대사들은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흉측한 몰골의 팬텀이 아리따운 여가수 크리스틴을 향해 부르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나의 흠모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좋은 작품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한국의 뮤지컬 관객들에게도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무대에서 우리 배우들이 한국말로 저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막연하지만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을 우리가 제작한다는 가정으로 접근해 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원작사이자 '앤드류 로이드 웨버 프로덕션'인 'RUG'에서 오페라의 유령의 한국공연을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았다. 과연 뮤지컬 시장이 형성되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번째 의문이었다.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세계 16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은 항상 매진 행렬을 기록했기 때문에 과연 한국도 그들 대열에 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무리한 생각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물러설 거면 애초에 접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달라진 국내 뮤지컬 시장과 국내최초 해외합작 공연 '브로드웨이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직접 제작한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난타', '명성황후'를 예로 들며 우리 뮤지컬 시장의 가능성을 얘기했고,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제작 의지를 피력한 결과 RUG에서는 한국 시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거쳤고 더불어 프로듀서의 자질을 철저하게 검증한 후 한국 공연을 수락했다.

두 번째로 난관에 부딪힌 것은 장기 대관이었다. 로열티를 포함 장대한 스케일의 무대 제작이나 화려한 의상 등 프로덕션 비용만도 엄청나 장기 대관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뮤지컬 전용 극장도 없는 국내 상황에서 과연 어느 누가 장기 대관을 해 줄 수 있을까 였다. LG아트센터의 관계자들을 수 차례 만나면서 '오페라의 유령' 작품이 한국 공연 성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이슈이고 문화가 산업화 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에 LG아트센터가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통고를 받았고 7개월이라는 장기대관을 승인해 주면서 나와 함께 어려운 길에 동승해 주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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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에서 제작하게 되었다는 제작 발표회가 있기까지 RUG와 엄청나게 많은 문서와 협의 사항들이 오고 갔다. 국내 제작에 대한 마케팅 및 홍보 계획, 캐스팅 계획 등 제작과 기획 전반에 걸쳐 수많은 E-메일이 오고 간 끝에 드디어 계약을 완료하고 제작 발표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비로소 작품 제작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동안 내가 꿈꾸어 왔고, 흠모해 왔던 어떤 대상이 드디어 눈앞에 형체를 드러내는 찰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할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품었던 처음 생각과는 달리 격려의 말도 오고 갔고, 기대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 작품을 꼭 잘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오는 겨울, 관객들은 아주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비행기표를 예약하지 않아도 되고, 영어로 부르는 노래를 알아듣지 못해 지루하거나 재미가 감소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을 타고, 자가용을 타고, 버스를 타고 역삼역 LG아트센터에 200억짜리 무대에서 우리말로 펼쳐지는 '오페라의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객석에 앉아 내가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느끼게 될 우리 뮤지컬 관객들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흥분된다.

이제, 나의 또 하나의 바람은 '사라 브라이트만' 이나 '마이클 크로포드' 같은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가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 탄생하길 바라는 것이다. 뮤지컬 배우를 손에 꼽으라면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 배우의 폭이 좁은 현실을 생각하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최고의 배우를 꼭 찾아야겠다는 나의 소망은 목표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돌이켜 보면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관람했던 그 첫 느낌이 오늘 이 작품을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데에 정말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작품을 대했을 때의 그 전율 그대로 나는 이 작품에 대해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뮤지컬 시장이나 극장상황, 원작사와의 문제 등도 어떻게 보면 나의 이런 생각을 포기하게 할 만큼 큰 난관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헛된 꿈일지라도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 꿈을 현실화 할 것이냐, 꿈으로 치부해 버릴 것이냐는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에서 꼭 공연하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12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오페라의 유령'의 막이 올라갔을 때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 "표 좀 구해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내가 꾸는 이 꿈의 종착지다. 정말 근사한 세계적인 작품,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면서 관객들도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더 좋은 꿈을 꾸길 바라는 바다. 기왕이면 뮤지컬 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