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대목

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수의 단순치 않은 가르침, 그리고 바울에 관한 주석

1. 序 論

'기독교인의 자유' - 윤리문제에 대해 말하는 해답의 핵심 --+

+- '자발적인 행위'

'법으로 정할 수 없다는 것' - 선함의 본바탕 --+

신약 성서의 적절한 해답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읍니까?"

예수의 가르침이 일련의 법을 새로 만들지 않고도 기독교인의 행동교훈을 찾아낸 과정을 알아보자....

2. 本 論

①'예수의 단순한 가르침'으로 돌아가라?

우리를 부추기는 유혹

이런 따위의 신학 문제는 죄다 잊어버리도록 하자. 그래서 예수의 단순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그 가르침들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모두 알려주므로 우리는 죄나 구원 같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문제점

㈀ 예수의 의의는 근본적으로 그의 가르침에 있지 않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 수의 가르침의 참다운 의의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누구인가 하는데 있다.

㈁ 이들 '단순한' 가르침이 결국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발견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산상 수훈등

㈂ 숱한 단순한 가르침은 우리의 사기를 꺽고 우리를 안락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평온을 깨뜨린다. - 종교적인 장광설에 맞서는 일련의 '급 진적인' 고발

㈃ 예수의 가르침을 '신학'이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예수의 윤리는 철두철미 종교 윤리이다.예수가 전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진솔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뜻없는 일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

→ 이와 같은 설명은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대한 전체 사명이라는 점을 빼고는 우리가 그의 가르침을 놓고 논란하지 못한다는 뜻임을 분명히 알려준다.

②예수의 가르침과 상황의 전후 관계

예수의 이 '전체 사명'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는 몇 가지 윤리 교훈을 주려고 온 것만이 아니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진 관계를 복구하고 하나님이 죄많은 인간을 사랑해서 그들과 친교를 바란다는 사실과 하나님 나라는 지금 당면한 현실임을 널리 알리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왔다.

따라서 그 가르침들은 그의 전체 사명에서 분리시킬 수 없다.

③ 예수의 가르침 속의 엄정성

㈀ 예수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의 절대명령을 전한 것임이 판명되었으며 '인간의 본성을 봐주는' 법이 없다. 따져서 '절충'한다든가 '기대'를 걸어본 다든가 하는 겨를을 허락치 않는다.

예)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 - 제한 없이 용서

㈁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구 -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 해야 한다는 것.

→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 보다 중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님 이신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눅 10,27)

㈂ 걱정한다는 것 - 하나님에게 완전히 맡기지 않는 것, 걱정과 하나님 신뢰 는 서로 배타적.

㈃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라는 강조 - 다른 강조점과 연결, 즉 내 이웃의 누구이든간에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예) 눅 10,25-37 어느 사마리아인 이야기

예수가 이야기한 사랑은 지극히 '우주적', 모든 것을 포용

④ 아가페 - 그리스도인의 사랑

㈀ 희랍어의 세 가지 사랑

에로스(eros) - 낭만적인 사랑

필리아(philia) - 형제 사랑과 동료 사랑

아가페(agape) - 기독교인들이 사랑을 말할 때

㈁ 기독교인의 사랑 곧 아가페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는 사랑 곧 거부할 지도 모르며 사랑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이다. 절대적이며 헌신적인.

㈂ 예수는 아가페를 몸소 실천하였으며 그의 온 생애가 아가페의 극적 표현.

십자가의 죽음 - 아가페의 절정, 쓸모 없는 인간을 위해 자기를 완전히 바침.

⑤ 용서한다는 것

아가페는 용서를 포함하며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니며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기 때문에 우리도 남을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의 완전한 목표는 "용서하지 못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을 용서하는 데 있다.

⑥ 동기 - 아가페의 절대 요구

예수의 가르침은 특히 동기를 강조. 윤리 문제의 참다운 근원은 동기에 있다.

우리의 동기는 끊임없이 문제점을 점검할 - 도덕적인 오염을 정화할 - 필요가 있다.

⑦ 비현실적인 이상의 실현

예수의 가르침은 비현실적, 예수는 몽상가라는 비판.

기독교 윤리의 난문제

"어떻게 하면 예수의 절대 요구를 이 세상의 우리 형편에 연관시킬 수 있을까?"

해답에 접근 할 수 있는 네 가지 출발신호

㈀ 아가페의 절대요구는 우리의 동기를 판단하는 절대 기준을 제공한다.

행동은 단순히 그 '결과'에 따라 판별되지 않는다.

㈁ 아가페의 절대요구는 주어진 상황이 이상적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 다. 즉 우리는 "아가페의 이상에 접근하려면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를 물어봄으로써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연결 고리 역할.

㈂ 아가페의 절대요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을 끊임없이 판단한다. 아가 페의 요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루었든'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 이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 현재 상태의 그대로의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거든다. 요구받고 있는 것을 모두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평화'가 실재한 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신과 희망을 간직 한 채 삶과 떳떳이 마주대할 수가 있다.

⑧ 바울에 관한 주석

바울의 윤리에는 두드러지게 새로운 면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편지 가운데서 아가페 윤리를 이 죄많은 세상에 적용하려는 뜻깊은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노예소유관습에 대한 그의 태도는 딱잘라 비난한 적이 없다. 그러나 바울은 성급한 비난 대신 노예소유관습에다 불씨를 심어 놓고 그것이 충분히 달아오르면 노예제도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였다.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 이야기 - 기독교인도 노예를 소유. 그러나 점차 변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죄악을 살펴 보고 아가페 윤리가 다이너마이트 같은 구실을 하도록 우리를 좨치지 못하는지 어떤지를 성찰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