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임원 이 취임사
1995 年
1996 年
정해광
회장
조형열
송영은
부회장
최은혜
조형열
총무
김대근
송영은
서기
최은혜
김진아
회계
조형열
이은애
신앙부장
김대근
길준일
지성부장
김수현
김현철
활동부장
송영대
임재웅
편집부장
김수현
 
 
"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날 것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현재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벗어날 것"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中
 
▶ 부회장 이임사
시작이 반
부회장 송영은

어쩌다가 대학부의 마지막 비운의(?) 부회장이 되어버린 것 같다. 시작부터 많이 불안했던 우리동기들의 임원생활은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귀여운 형렬이. 더 귀여운 재웅이 오빠....

유난히도 상처 잘 받고 또 개성 각자인 우리동기들 사이에 끼어서 한 몫을 당당히 해냈다. 또한 선배님들의 도움이 유난히도 컷던 한해였던 것 같다. 큰 나이차이를(?) 극복하시고 우리를 언니 오빠처럼 때로는 엄마 아빠처럼(??) 잘 이끌어주셨다.

솔직히 어떻게 뭘 해야할지몰라 선생님들 얼굴만 쳐다봤던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임원들 위상도 살려주시면서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팍팍 밀어주셨던 우리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느부의 임원이라도 시작은 희망차게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처음 임원을 시작할때는 모든 여건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차게도 시작했고 또 드디어 이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이제 청년Ⅰ부로 새로 출발하는 우리 대학부(아직은..)의 앞날이 나날이 발전하는 희망으로 가득차길 기원한다. 비지땀과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면서 성서를 통독해냈던(결국에는..) 일과 지리산으로 떠나던 날 혼자 집에서 불안해하던 일. 모두 잊지 못할 것이며 잦았던 의견충돌로 상처받아서 답답해 하던 일. 대학부실을 다시 칠했던 일... 다 잊지 못할 것이다.

시작이 반이랬다 !!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1993년 대학부 주제 성구
 
 
 

▶ 편집부장 이임사

앗! 원고 청탁, 으으으...
(원고 청탁 할 때가 좋았는데.....)
편집부장 임재웅

몇 일전 일이었다. 집에 가보니 책상 위에 낯선 beep number와 '김수현'이라는 글씨가 적힌 메모지가 보였다. 수현이가 왜 나를? 하는 의심에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호출을 했다. 몇 분 후에 집으로 전화가 왔고 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좋은 것도 잠시, 수화기로 들려오는 수현이의 예의바른 목소리, '이임사 써주세요'라는 거절하기에 난감한 이야기였다. 그와 동시에 작년에 내가 편집부장을 했던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도 작년 이맘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글 좀 받아 내려고 험악한 얼굴에 있는 아양 다 떨어가며 부탁했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더 수현이의 부탁이 남 얘기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음 그러니까 내가 이임사 쓸 자격이 있을까?'라는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그러나 수현이의 딱 부러지는 한마디, '물론 써야죠'. 수현이는 지금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지, 나를 좀 이해해 줬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내가 작년에 편집부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돌아보기에는 쑥스런 작년 일을 생각해 보련다. 남들과 달리 복학 예비 생으로서 한 학기를 쉬어야 했던 나는 처음에 내 나름대로 대학부의 위기감을 느껴서 인지 무언지 대학부의 기적적 소생을 위한 발악을 했었다. 하루 면도 안하면 산적 같다는 얼굴을 가지고 수다떨고 오로지 4/4박자만을 치는 기타 실력으로 삑사리 내면서 분위기 띄우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그럭저럭 임원들의 모습에 익숙해졌을 때쯤 나에게 가장 큰 행사였던 '지리산 종주'를 해광이, 진아, 영은이, 형렬, 은애, 현철이와 함께 준비, 실행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특히 행사 이틀째부터 내리던 비는 일정을 안내하던 나에게 너무나 큰 정신적 압박감이 되었다. 몇 번 와보았던 course라 길을 잃을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해가 지고 난생 처음 보았던 비바람(은혜를 제자리걸음 시킬 정도의 위력)은 나의 수명을 10년은 단축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하나님은 다름 아닌 세석 산장의 불빛이었다. 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살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종주는 못했지만 아무사고 없이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에 나는 너무나 감사했다. 그것으로 나의 임원으로서 대학부 추억은 film이 다한 것 같다. 이임사? 그게 뭐하는 거더라... 원고 청탁을 할 때가 좋았는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잘 모르는 탓에 작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몇 자 적어 보았다. 그리고 전임자로서 회원들에게 하고픈 말은 편집부장에게는 아니 전 임원들에게는 회원들의 작은 성의가 가장 큰 힘이 되며 청년 1부가 새로운 자리 매김을 하는데 큰 역할이 되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올해는 드디어 염려대로 '대학부'가 '청년 1부'로 명칭과 성격이 바뀌었다. 그 염려란 물론 기존의 대학부에 정이 든 사람의 입장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새 임원들이 청년Ⅰ부를 더욱더 잘 이끌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쓸 말도 바닥 났는데 이 기회에 제대 축하 전화 안 걸었다고 구박하던 해곤이의 제대를 축하하며(감동하겠지?) 올해에 청년 1부의 큰 존재가 될 수 있기 바란다. 나는 예비군의 위력을 믿는다. 새로운 96년 임원들에게 나의 사랑을 전하며 창피한 글을 마치려 한다.

그리고 볼수록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새로운 편집부장, "수현아 FIGHTING !!"

대학 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왔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 회장 취임사

사랑은 쟁취
회장 조형열

임원으로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느낌이 묘하다. 내가 책임질 부분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어떤 것을 이루고자 하시는 부분인지. 인간의 능력으로 아등바등한다고 순조롭게 일이 되는 건지.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다시 한 번 또 쉽지 않은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떠나는 사람과 새로 오는 사람이 있을 때, 새로 오는 사람의 측면에서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하는 경우의 이취임의 때가 가장 그런 것을 많이 느낄 때인 듯 하다. 우리는 이임하는 사람에게 고생 많이 했다, 수고 많이 했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취임하는 사람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를 잊고 사는 모습일 수도 있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향이 강하겠지만. 나는 전자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면서 96년을 시작했으면 한다. 참으로 벅찬 95년 한 해였다.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모든 임원들이 공유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에게 국한 지어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경험한 임원, 그렇기에 조금은 어색한 느낌.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사람들 관계 속에서 녹아지는 것이다. 특히 모두들 마음이 따뜻한 95년 대학부 임원 속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떠나가는 상황은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상황은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느낌은 아니다. 매년 그랬다고는 한다. 나머지 임원 몇몇만이 끝까지 임원의 자리를 지킨다고.. 이런 말이 조금은 더 슬프게 한다. 올해만 깨진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 느낌은 우리의 실패라고 위안할 수 있지만 매년 되풀이되는 악순환이라면 전반적인 위기이다. 그 속에서 나는 피곤해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또 한 해를 열었고 그 속에 서 있다. 그렇기에 이것이 선택인지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선택이라고 믿는다. 내가 안 한다고 했으면 안 할 수 있는 공간, 하나님은 항상 스스로의 판단으로 다가가길 기다리신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올해 또 피곤해하면서 한 해를 부딪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학부에 대한 사랑도 몸으로 느끼는 피곤함 속에서 다가온다. 그렇기에 좀 더 값진 사랑일 듯 하다. 이런 사랑을 후배들에게도 이어주고 싶다.
 
 

▶ 부회장 취임사

너를 아름답게 하리라..
부회장 최은혜

내가 이 교회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는 참 아는 사람도 적어서 일학기 내내 소개만 했던 것 같다.

정말 최근까지도 내 소개를 했는데..그런 내가 어쨌든 부회장을 먹었다는 소리를 들으신 울 어머니...'하하~~'하고 웃으셨는데..난 농담으로 어머니에게 내가 다 말아먹을거라고 말한 생각이 난다.

내가 대학 일학년에 입학 했을땐 난 매주 대전집으로 내려갔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다..거의.. 대전의 교회 사람들이 좋았고, 충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교회에서 성가대도 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결국 2학년 때부터는 서울에서 교회를 정하고 나가기로 했다.

그러던 것이 일년이 지나도록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한마디로 방황을 하다가 결국 날 뒤돌아 보니 내가 너무 한심하여 3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무조건 교회를 정하고 나가기로 작정을 했다. 그래서 영기 언니와 진영이가 다니는 교회를 가기로 하고 비교적 열심히 나왔다.솔직히 별로 열심히라고는 말 할 수 없다..첨엔 내가 익숙했던 분위기와 너무 틀려서 별로 애정도 없었고, 내 맘대로 다녔으니깐...그 후 여름행사로 통독 수련회와 지리산등을 다녀오면서 조금씩 애정이 생겼다..이젠 정말 나의 대학부구나라는 생각..

어쨌든 비교적 꾸준히 나온 나를 사람들이 이쁘게 봐 줬나 보다...

나도 조직생활을 좋아하는거 같고...하하...

첨엔 부회장이란 자리가 좀 쉬워 보였다...그래서 4학년이 된다는건 별로 부담처럼 느껴지지 않았었다. 내가 중고등부 임원 이었을때는 임원이라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었다고 생각했었으므로....

그런데 임원 L.T.를 가서 있는데 이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대학생이라는 나이에 걸맞는다고나 할까? 너무 내가 어리게만 생각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엔 선생님들께서 거의 모든 걸 해주시고 우리는 그냥 뒤쫓아다니기만 했던 거 같았는데, 첫날 그 길다란 회의를 마치면서 '아.. 내가 고생길에 접어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노력해야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L.T.를 하면서 앞날이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걸 느꼈다.너무나도 정해진 것은 없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1년이 지난 후에는 많은 것들이 확실해지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으로 되어있었으면 좋겠다..이를 위해선 우리들이 다 같이 만들어가야 할 것이고...

솔직히 나에겐 잘 해낼 능력이 없다. 그리고 걱정도 많이 된다..하지만 하나님이 날 뽑아 놓으셨으니까 뭔가 대책이 하나님에게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임원들이 다같이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것과 서로 잘 도와주리라는 것, 선배님들도 많이 도와주실것이라는 믿음에 오늘은 두다리 쭉 펴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 내가 내 안에 착한 일을 시작했노라. 또한 내가 이루리라.

너의 영혼. 낙망치말고 나를 바라라. 너를 아름답게 하리라.

너를 아름답게 하리라. -

Ⅰ 

주여,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은혜만이 축복이 아니라 시련도 축복이라는 것을 

시련에서 받은 은혜는 한없이 고귀하며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은혜는 주시지 않고 

감당하지 못할 시련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주님만 찬송하게 하옵소서!!! 

Ⅱ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 총무 및 신앙부장 취임사

정동의 빛과 소금
총무 및 신앙부장 김대근

두 번볁 취임사..... 왠지 다시 취임사를 쓰려고 보니 굉장히 쑥스럽다. 이 나이에 다시 임원을 할려니 후~~.

옛날 내가 쓴 취임사를 읽어보았다. 뭐가 그리 거창하고 요란했던지. 그때는 참 들떠 있는 가운데서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드디어 이 거대한(?) 대학부를 운영하게 된다...라고.... 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한해였다. 점점 초라해져가고 썰렁해지는 대학부를 볼 때의 심정이란. 특히 100% 쉰입생으로 이루어진 신입생 환영회를 바라 볼때 나는 내가 임원이라는 것에 대해 수치심까지 느껴야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할 것은 다 했다고 자부한다. 최후의 농활이나 작년에 하지 못했던 Home Coming Day라던지 참 고생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중에 무슨 취임사가 이런가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취임사는 두번째인데 이임사를 써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 나름대로 정리하고 평가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최근 한 회원중에 우리 92학번 동기들이 대학부를 말아먹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에 대한 항변의 시간도 갖고 싶었고....

이제 다시 취임사로 들어가자. 솔직히 올 한해 막막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대학부에서 4년간 단 맛, 쓴 맛 다보고 했기 때문에 올 한해-청년부로 명칭이 바뀌기는 하지만-청사진이 대충 그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나도 남이 힘들? 같이 불평하는 짠밥은 지났다. 이제는 후배들을 위로해주고 다독거려야하는 입장에서 새로 태어나는 제1 청년부와 함께 나도 다시 거듭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부디 정동의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는 제1 청년부가 되길..
 
 

▶ 지성부장 및 편집부장 취임사

새로운 시작에 서서
지성 및 편집부장 김수현

정동제일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일년이 지났군... "십계"라는 이름의 젊은이 영상성서연구 때 언니와 엄마의 협공에 어쩔 수 없이 정동제일교회를 접하게 된 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냥 행사에 참가한다는 생각으로 매주 목요일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그리구 일년후 임원이란다. 형열이의 꾀임과 사람들의 눈빛에 넘어가고 말았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나타나는 내게 무슨 기대를 한 걸까......

사실 많이 두렵다. 대학에 들어오고 지난 3년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사람 사이의 믿음, 순수.. 그런 것들에 대한 체념, 인간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인정.

사람의 조직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와 상처가 컸기에 책임을 떠맡고 싶지 않았고, 예전과 같은 열정이 사라진 지금 내가 이 힘든 상황에 있는 대학부를 위해 잘 해 낼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힘이 되셨듯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가 계시니...

다시 용기가 생긴다. 일에 대한 결과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주께 맡기는 마음자세를 오랫동안 잊고있었다. 그리고 형열이, 은혜, 대근오빠, 영대같이 든든한 동반자들이 있다는 것과 대학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많은 선배, 동기, 후배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 시작이라는 말이 담고있는 희망과 역동성.

그래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를 자양분으로 하는 나무이고 싶다.
 

▶ 활동부장 취임사

꽉찬 모습
활동부장 송영대

추위의 변덕이 더해 가는 1996년 신년 제1청년부회원 여러분의 가정안에 주님의 사랑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어쩌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좀 막막하고 불안할 뿐입니다. 모 회장이 재수만 하지 않았어도(재수를 한 이후로 더 자주보게 되었거든요.) 제 어깨에 있는 짐을 좀 덜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그냥 남이 멘 총대를 내가 대신 맨다는 생각으로 하기는 했지만 알고보니 교회일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더군요. 평상시 교회의 분위기를 봐선 그렇게 까다로울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솔직히 그 반대였던 것 같아요.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 건 얼마전 L T때였습니다. 첫날은 새벽6시까지 다음 날은 자정까지. 강행군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첫날 밤엔 어쩐지 잘 먹인다 싶더라구요.(뭔지 아시죠?)

일이 하나둘씩 제 머리에 들어오면서 지금 제1청년부가 과도기의 어려운 시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여있고, 또 저를 제외한 모든 임원들의 투지에 힘입어 저도 열심히 해보리라 다시한번 입술을 賁물어 보지만... 정말 맥이 풀릴 때가 있어요. 왜 모든 집회는 항상 임원과 교사만의 자리 밖에 될 수 없는 것일까?

신입생으로 와서 지금에 오기까지 이 말을 누차 해왔지만 전 정말 자리가 꽉찬 모임을 그려왔습니다. 텅빈 부실, 아니면 밀물과 썰물을 연상시키듯 몰려왔다 몰려나가는 모습. 이런모습들, 아마 열심히 나오는 회원들한테는 이만큼 김새게 하는 것도 없다고 봐요.

임원들만의 숙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고 각자 자각해야 할 문제일꺼에요. 전 앞으로 이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일해볼까 합니다. 활동부일 자체가 이런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기도 하니까요. 물론 부원 여러 부원의 기도와 성원이 있으면 더 잘 되겠지요?

여러분 '꽉찬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 新임원 프로필

96년도 제1청년부회 임원 PROFILE
최은혜

⊙ 회장 조형열

우선 외모만 보자면 우리 대학부에서 가장 회장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남자. 외모에 걸맞게 대학부원과 임원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속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한 무서운 아이.

그 듬직한 외모뒤에서 가끔 고개를 내미는 재롱이 그의 매력 뽀인트..

Profile에 이말을 꼭 써달라고 했는데....

"정해광의 왕자병을 이어 받았고 임원들을 무지하게 괴롭힐 각오가 되어 있다고..."

두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에 모든 임원들이 발발 떨기 보단 푸하하하.. 구엽다고들...

⊙ 부회장 최은혜

일년 전 정동 대학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은혜.

일년 후, 회장이 된 형열이의 눈길 한 번에 부회장을 먹은 은혜를 두고 김모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고...."

하지만 뭐 굴러들어온 돌이 다이아몬드 같은 거면 박힌 돌을 빼낼만 하지 않겠어?

일년만에 부회장을 먹을만한 뛰어난 사교력과 일년동안 정동 제 1 셷년부를 뒤에서 굳세게 밀힘(굵은 팔뚝인감?)을 겸비한 여자.
 

⊙ 총무 및 신앙부장 김대근

역대 최대 회장후보, 대학부 최대의 썰렁맨등 화려한 별명을 갖고 있는 남자.

96년 남은 정열을 불사르며 자신으로선 마지막 정동 임원을 멋지게 장식하겠다고..

임원 경력 두 번째와 임원 중 최고참임을 내세운 그의 파워가 올 일년 어떻게 발휘될 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헤헤~~

활동부장인 영대와 환상적인 듀엣을 이루며 가끔 썰렁하게 대학부를 침몰시킬 때도 있지만.....누구보다도 대학부를 사랑하는 따뜻한 남자...

⊙ 지성부 및 편집부장 김수현

작가 김수현이 아님을 우선 밝혀둔다...

통통하고 귀여운 볼 뒤에 숨어있는 뛰어난 재능이 번뜩이는 여자.

형열이의 유혹에 넘어간 게 자신의 일생일대의 실수라는....

임원 L.T.를 다녀와서 무지한 덤탱이를 뒤집어 썼단 말을 하면서도 바로 다음 날부터 편집회의를 소집하는 무서운 추진력의 소유자...

부회장과는 무지하게 짝짝꿍이 잘 맞아 둘이 맨날 만나면 어딜 간데지 아마?

⊙ 활동부장 송영대

모회장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활동부장을 거머쥔, 현재 임원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진짜 신세대.... 자신의 말로는 비록 회장의 협박이었다고는 하나 남자들이 권력욕이란....(이렇게 말하더군. '모 회장의 협박을 받아 본 일이 있는가??')

연예인인지 연애인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는 착실한 생활을 보이겠다고 다짐하는 우리의 팔팔한 체육부장....

96년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 신임원에게 주는글

신임원에게 바란다
정해곤 (91)

여러분이 임원을 맡은지도 한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제는 신임원이란 말도 어색하게 들릴 때입니다. 이런 때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까 좀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충고보다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편이 나을 듯 합니다. 또, 내가 뭐 충고 할 수 있는 그런 격조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습니다. 내가 대학부에서 느낀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진정한 조언자이자 친구이자 연인이고,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신앙에 자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 있어 자신감이라는 건 좀 무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신앙에 대한 확신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나름대로의 신앙관이 비로소 자리 잡은 때가 93년도 내가 임원을 할 때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는 거의 빠지지 않은 목요 성경 공부와 예배입니다. 96년도 한해를 보내며 멋진 신앙관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평생동안 아마도 가장 중요한 한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과 같은 나라에 갈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 하!

사람이라는 동물은 도대체가 너무 잘 잊어버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만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 진짜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L.T때의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까 예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진지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이 때의 마음가짐이 가물가물 거릴때가 있을 것 입니다. 그때가서 '사람들은 원래 잘 잊어버리니까' 하고 넘어가지 말고, 지금의 마음들을 잘 상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 머리 좋다던 나도 임원하는 동안 처음 마음가짐을 상기해 볼 기회가 대충만 잡아도 오백번은 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하던 것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힘겹게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짜증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입니다. 그 순간만 지나면 우리의 끈끈한 애정과 뜨거운 정열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임원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해 봤었습니다. 혹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단 한가지, 임원을 하기 위해서는 아닌가 하는 생각. 좀 과장된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교회 임원을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사명을 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택하여 짐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택하여 짐을 받은 이상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고 우리는 혼자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봐야 지루해질 것 같으니까 단 한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선택을 받았고 그래서 예수님께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는 사실을.....

이제 임원이 된 이상 여러분은 대학부에 관한한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 해야 합니다. 어디서건 무슨 일을 하건 뒤에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뒤에서 하기 때문에 남들은 그들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단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서로에게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좋을 때 보다는 힘들 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힘들다고 느낄 때 마음을 열어보이고, 남이 힘들게 보일 때 다가서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보람이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찾는 것입니다. 찾으려고만 한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라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의 집단이 아니듯이 그안에 속한 대학부도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하고 모든일에 있어서 기도로써 한다면 아주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요한 12:24)

▶ 졸업생의 辯

삶은 하나님이 주신 숙제
김욱래 (90)

ぢ수현이가 나에게 전화를 다하다니...っ하며 받았으나 그게 원고청탁 전화일 줄은 몰랐다. 나는 이제 대학부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래도 끝까지 날 잡는것을 보니 이유야 어떻든 간에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느새인가 난 이미 예비역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구경만 했던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하긴 나의 90학번 동기들이 이미 대부분 졸업을 했으니 난 차라리 늦은 편이다. 대학 4년간을 돌이켜보면 대학부 얘기밖에 할말이 없다. 그만큼 난 대학부에 집착이라고 까지도 할 수 있을 애정 아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그 모임에 빠져 들어 그 모이는 날만을 기다리며 학교생활을 유지해왔던 것 같다. 물론 애프터 시간을 더 좋아한 적도 있었고 나의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그 집단을 떠나 있었던 적도 있었다. 대학부는 나에게 사랑하기가 정말 쉽다는 것을 알려줬고 또한 그 사랑을 지켜나가기가 힘들다는 것도 알려줬다. 햇수로 6년간이니 대학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도 많이 바뀌는지 대학부실을 청소하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얼마전에는 페인트칠까지 했다. 사랑하는 곳이 늘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었다. 대학부실에 한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 적도 있었다. <찬양하라 내영혼아>의 で나누는 기쁨と란을 읽고 또 쓰고 혼자 기타를 치며 대학부의 집회분위기를 떠올리려 애를 쓰고... 나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4분의 1을 대학부와 함께 했다고 생각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얼마전 나는 한 젊은 생명의 죽음을 보았다. 그냥 울먹거리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를 3일동안 침대에 누워 울게 만들었다. 난 그 죽음을 보며 で죽는 것이 참 쉽구나と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언제 어느 순간에 내 앞에 선이 그어져 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우연히 행운이 왔다면 불행도 똑같은 모습으로 올 것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다. 어떤 것도 불확실하며 어떤 것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그러한 작은 종말을 보여 주신 것일까? 정말 삶은 하나님이 내주신 숙제라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는 다만 숙제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숙제에 알맞는 상벌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실 것이다. 대학부의 마지막 졸업생이 된것을 진심으로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제 1청년부회의 초대회원이 된것도 영광으로 생각한다. 졸업 후에라도 열심히 숙제를 하려고 마음먹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 젊은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