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생의 辯

언제나 뿌듯함이....
주경희 (92)

언제나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움 같은 것들이 흩날리는 20대 초반을 늘 언제나 설레임과 벅참으로 보냈다. 고등학교의 사춘기와는 또 다른 생활과 뜨거움은 나를 항상 가볍게 했고 가벼움은 늘 명랑함으로 이어졌다. 나의 대학생활은 정동교회 대학부에 모든 신경이 다 가있었다. 중간 중간 외도(?)를 하기는 했어도 감성을 위로 받을 곳은 오직 한 군데 뿐이었다.

- "대학부에서 ..." (옹달샘)

뿌듯함 ...

졸업을 앞두고도 왠지 지난 일을 돌아다보면 내 생활들은 꿈꾸는 듯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외면(外免)의 즐거움도 반드시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신앙에 대한 두려움과 학업에 대한 자신감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 여기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좀 더 구체적인 것들 예를 들어 사고의 차이점을 극복하는 법, 나이의 무게를 인식하는 일 등등...-등은 언제나 과제 였다. 그런데 어느덧 나는 나이를 성큼 먹어버린 것이다. 물론 갑자기 나이가 든 것은 아니겠지만 세월은 점점 나를 변화시켜가고 있었다.

변화는 어두운 골목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신분이 확인 될때까지의 두려움과 같은 것이여서 청소년기를 벗어난 그리고 갓 어른이 되었다고 언젠가 부터 남들의 의식으로 부터 새로운 것들에 대한 뿌듯함과 동시에 양면성을 지닌 것이 되어 버렸다. 정동은 이런 모든 일련의 일들을 한꺼번에 치룰수 있는 곳이였다.

4년을 마감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지금 내 기분은 4년이라는 기간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꿈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많은 사건들이 시간을 단축해 주었을 것이다. 후회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미련도 없다. 그저 수천의 시간들을 함께 보낸 이들을 잊지 말고 그 시간들속에서 변화했던 감성들을 돋울 뿐이다.
 
 

▶ 졸업생의 辯

그에게 구하라
김수진 (92)

때로는 시간을 나누고 구별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것을 우습게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그것이 너무도 필요하게 여겨지고 맺음과 시작을 갈망합니다.

주술에 갇혔다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기분입니다.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아, 이제 맺고 싶습니다. 그 답답하고 공허하고 어두웠던, 혼돈스러웠던 시간들을.

하나님을 찾습니다. 기대고 있던 것이 모두 흔들거리고 무너지고 있는 이 ?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내 존재의 근원이 되시고 내 삶의 물음의 답이 되시는 그런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꾸만 낙심이 찾아오고 공허함이 나를 감싸나 그러나 결코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

희망, 결코 놓지 않습니다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기다립니다.

목마름으로 당신을 찾습니다. 응답하시리라.

이제 시작을 말합니다.

내 삶은 결코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비참함에 참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의 타파를 추구해야한다.

온갖 차별과 분쟁, 억압, 착취, 파괴, ..........

그것의 시발점이 되는 교만, 시기, 헛된 욕망, 무책임, 무심함, 게으름.

내 속에서 먼저 賁끗해져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에게 구하라. 믿음과 열심함으로, 정성과 진실함으로
 

▶ 졸업생의 辯

이제는 졸업..
이우희 (92)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졸업..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느니 하는 말로 자위해보지만, 지난 날의 아쉬움은 아직도 가슴을 뿌옇게 감싸고 있다.

어찌보면, 오히려 나는 졸업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지 않는 축에 속한다. 곧바로 사회에 진출하거나 또는 유학준비를 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한 학년 진급한데 불과하다. 그러나 역시 졸업이라는 낱말하나가 주는 무게는 그저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96년들어 대학부가 커다란 변화의 몸짓을 하는 것이 보인다.

목요일에 하던 성경공부를 주일로 옮기고, 이름과 회칙을 바꾸는 등 일련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갑작스런 것은 아니다. 성경공부 요일변경은 94년 임시총회를 열어 논의했으나 부결된 바 있고, 대학부의 명칭과 회칙변경 역시 94년 정기총회에서 세 시간여 동안이나 격론을 벌이다가 결론을 못 내리고 끝낸바 있다.

그 당시는 대학부 내에서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이었다면, 이번 조치들은 주로 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덕분에 예전과 달리 발빠른 진행을 해 나갈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절차의 합법성 또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대원칙의 하나인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있어 임원을 맡은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대학부에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바칠 것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있을 사람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 미루어 명백한 사실이다.

끝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선 후배, 동기들을 만나게 해 준 대학부에 감사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 졸업생의 

하나님 보시기에
이은진 (92)

바로 이삼일 전에 대학교에 입학해 대학부를 들어온 것 같은데 벌써 졸업하고 나가라고 한다. 꼭 마치 밀어내는 기분이다. 얼마 전에 썰렁한 분위기로 선배들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이란 것을 하고, 추운 겨울에 나가서 갓 입학해 모르던 선배들 그리고 알던 선배들과 섞여 '동계수련회'를 했던 것도 같다. 그게 다 바로 얼마 전인것 같은데 정말로 졸업을 하고 세상에 나가게 된다. 조금이라도 철들고부터 늘 교회에 있었다. 물론 나의 대학 4년도 다르지 않다. 솔직히 대학에 입학해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했다. 학교가 멀어 힘들다는 이유로, 그리고 이 안에선 무언가 답답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놓지 않으셨다. 많은 유혹들 가운데도 친구들이 보고싶어 왔고, 조금 후에는 선후배들이 보고싶어 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가운데 주님은 항상 계셔서 나를 늘 이끌어주셨다. 가끔씩 목요 예배를 와보면 늘 사람들이 반겨주었고 더불어 주님도 잘 왔다고 칭찬해주시는 것 같았다. 3학년에 올라서는 임원을 맡게 되면서 대학부에 더욱 열심히 하게 되고 목요 예배도 전보다는 잘 나오게 되었다. 그땐 내가 안나왔을 때 생각은 안하고 안나오는 사람들을 원망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와서 같이 이렇게 주님 말씀듣고, 같이 밥도 먹으면 참 좋을텐데……'하고 말이다. 4학년이 되면서는 물론 3학년때보다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임원이 끝나 한발 뒤로 물러서기도 했거니와 4학년이라는 부담감이 앞섰다고나 할까? 지금 4학년이 되는 후배들은 지금의 나보다 더 열심히 하리라 믿는다. 더욱이 이번에는 동기들이 임원이 많으니까 도와주기도 쉬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참 많은 일들이 생각이 난다. 대학교 처음 들어와 안 나오던 목요 예배에 나왔을때 회장이던 준건이 오빠가 반가와하며 모처럼 인심쓰며 푸짐하게 저녁을 사주던 일도 생각난다. 설악산에 갔을 때는 올라가지는 못하고 남아서 비도 오는데 손전등도 없이 늦게 오는 사람들을 초조하게 걱정했던 일도 생각난다.(물론 올라갔던 사람들은 더 고생을 했겠지만) 작년엔 농활가서 배추밭에서 김매기도 하고 회원들에 맛있는 밥도 주었던 일도 떠오른다. 대학이란 곳에 들어오면 많은 유혹도 있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그 가운데 교회내의 대학부란 곳을 선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곳보다는 이 곳에선 신앙의 지침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지금의 대학부 역시 '신앙'이란 이름으로 차별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1부로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리라. 물론 아쉬운감도 있으나 더욱 많은 발전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고 훌륭하고 새로운 모습의,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럴듯한 청년 1부로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졸업을 축하하며

졸업생을 비롯한 대학부원에게 보내는 글
정준건 (90)

졸업생에게 바라는 글을 써달라는 편집부의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약간 난감했다. 마치 대학부 회원으로써 곧 졸업을 앞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글을 써야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 생활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될 것 같은데 대학원을 다닌 본인 역시 금년에(96 년 2월) 다시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앞둔 또 하나의 대학부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대학부 회원이 아닌 내가 교회를 소흘히 하기 쉬었던 기간동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족했던 점을 반성하고 현재 졸업을 앞둔 대학부원을 비롯한 모든 대학부원과 생각을 나누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대학 생활과 사회(나의 경우 대학원) 생활의 차이점은 나 자신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다소 선택적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기질이 맞는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로 진출하게 될 때는 이미 정해진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고, 식사하는 중에 각자의 개성이 말살되지는 않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성격, 개개인의 특성, 심지어 상급자와의 관계에 따라 어느 정도 규격화된 생활 양식(여기에는 가치 비중, 대화 방법 등이 포함된다.)이 존재하고 그러한 양식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방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적 정서의 일부분만을 받아들인 '어떤' (더구나 비교적 자유스러운 대학생활을 경험한)사람에게는 주위에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한 해석이 부족하여 '실족'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본인의 경우에도 이러한 점이 혼란스러웠다. 이성적 측면에서 사물, 사건에 대한 가치관이 교회의 그것과 다른 경우를 '느낄'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이유는 감정이 예민한 상태에서 왜곡하여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감정적 측면에서도 인간 관계에 대한 원칙은 교회에서 강조하는 순수함(본인은 '순수'가 기독교 인간 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고 있던 나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란 이러한 차이가 진짜로 존재하느냐를 확인하는 것이었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방대한 기독교적인 정서와 윤리를 나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느냐에 대한 의심이었지만 이러한 의심은 다시 가정을 낳고 그 가정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했기에 결국 '정답'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여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여 따르기로한 기독교적 윤리와 현재 자신에게 요구되는 조직의 사고 방식이 다르고 이것 때문에 혼란을 느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재 자신이 교회의 이 자리에 왜 앉아있는 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기독교인인 우리는 그 신앙을 실천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야 되고 그 말씀과 행동을 항상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즉 약간의 고난을 각오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예수님이 겪으셨던 엄청난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생활속에서 약간의 절제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에 신경쓰자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고난을 행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난을 경험하고 잘 받아들임으로써 대중의 흐름 속에 떠밀려서 소멸되어가는 자기 자신의 존재, 즉 'identity'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때때로 같은 입장에 처한 동료를 발견함으로써 서로의 고난을 나누고 그리하여 그 고난이 가벼워지는 기쁨도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본인의 경우에는 기독교적인 윤리관을 제대로 모르고 교회에도 거의 놀러다니지만 이제부터는 성경에 대한 공부를 성실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종로 6가에서 길거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난을 파는 아주머니를 봤다. 이 매서운 꽃샘 추위에 불씨 하나 없이 땅바닥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벌개진 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주머니에게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 아파하는 일 밖에..... 

만약 그 아주머니께서 누추한 차림으로 3부 예배에 참석하신다면 정동 대학부인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그리고 정동인들은..... 

그녀를 마음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우린 벌써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처럼 보이는 다수의 편에 서는 자 - 대학부 - 가 되자 

대학부 노래책 中
 
 

▶ 정동 논단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이우희 (92)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독재정치 아래에서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수없이 겪어 왔다. 이 과정에서 탄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또한 많은 악법들이 탄생했다.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지금은 대부분이 폐지되거나 개정되었지만, 소위 문민정부라 일컫는 현 정부에서도 무소불위의 위세를 떨치고 있는 악법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특히 우리 民族史의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인 이데올로기를 볼모로 하여, 독재 정권의 약점을 감추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함으로써 정권유지에 악용되어 왔다는데에 더욱 그 악법성이 있다. 얼마전, 국가보안법 제8조의 반국가단체와의 회합 및 통신행위 금지에 위반하여 북한내 학생단체와 통신을 한 사건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내린 사건이 있었다. 비록 1심 재판에 불과하지만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아래에서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원론적인 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고, 이 법이 얼마나 인권을 탄압하는데 악용되었는지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 2월부터 1995년 6월 11일까지 국가보안법에 의해 체포된 사람의 수는 610명이며, 상당수는 영장없이 불법연행, 성희롱·고문으로 인한 자백강요를 당했다고 한다. (월간 「말」 1994년 4월, 82쪽)

1) '간첩행위'와 '국가기밀'을 전달한 사실에 대한 처벌

문제는 '국가기밀'이라는 개념이 너무 넓게 정의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 1994년 5월 황석영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

황석영씨는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하고 국가기밀을 전달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가 전달하였다는 정보는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그의 대화내용과 한국에서 출판된 잡지들이었다. 대법원은 한국에서 널리 공표된 것일지라도 북한을 포함하여 반국가단체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은 국가기밀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2) 반국가단체로부터의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

국가보안법 제5조 2항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 또는 국가의 안전과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금품을 수수한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예) 작가인 황석영씨는 간첩행위를 위한 공작금으로 북한당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이 돈은 「장길산」의 출간료로 받은 것이었다.

3) 국가보안법 제3조, 제4조, 제5조를 위반한 사람들을 당국에 불고지한 경우의 처벌

예) 조무하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금된 남편 장기표씨의 위반사실을 불고지한 혐의로 집행유예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전대협 1기 의장인 이인영, 미문화원 농성사건을 주도한 함운경, 삼민투 위원장 출신인 허인회씨등이 남파간첩 김동식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구속되었다. 이인영씨와 함운경씨는 김이 간첩인 것을 모르고 만났다고 하고, 허인회씨는 만난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4) 반국가 단체와 회합 및 통신 행위 금지

예) 1994년 11월 체포된 안영민 씨에게 부과된 혐의중의 하나는 그가 반국가 단체에 가입하였으며, 반국가단체 구성원 중 한명, 즉 자신의 아버지와 회합하였다는 것이다. 안영민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결성한 조직에 가입한 것을 부인하였으며,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인간의 本性이다라고 말했다.

5) 당국의 승인없이는 북한방문금지

예) 황석영씨는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1993년 체포되었다. 주임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피고인이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순수한 열정에서 행동하였다고 주장하더라도 피고는 명백히 법을 위반하였다. 피고인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야기할수 있는 혼란을 고려해 볼 때 피고인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6) 반국가단체 활동에 대한 찬양, 고무, 선전 또는 동조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예) 60세인 기세문씨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위해 싸웠던 전 정치적 수인의 장례식에서 죽은자를 애도하는 소책자를 배포하고 제작하였다고 하여, 죽은자를 미화하고 북한을 찬양·동조하는 것이라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94년 5월 김형렬씨는 컴퓨터 통신의 소식란에 친북적 메시지를 게재한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현대철학 동우회라는 단체의 회장인데 회원들끼리 토론하기 위하여 이것을 게재하였다고 말하였다.

(위의 예들은 「연세」紙 43호에서 발췌)

국가보안법은 1990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는 한정 합헌결정을 받아 1991년 부분적으로 개정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적용은 자의적으로 인권탄압에 악용되어지고 있다. 얼마전 부산지법은 북한의 한 대학 학생위원회와 팩시밀리를 교신했다하여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등으로 구속기소된 부산수산대 전 학생회장 주우열씨에 대한 선거공판에서 "단순히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나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북한 집단의 주장과 일치하는 주장을 하는 것만으로는 반국가 활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는 90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충실히 따른 것으로 이적물 소지·제작·반포 등에 대한 잇따른 무죄판결에 이어 나온 것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다른 보안법상의 독소조항에도 비슷한 판결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단과 관계없이 수사권을 가진 검찰, 경찰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마구잡이식의 법적용으로 인권탄압에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내부에서 자발적인 통일 논의를 억압함으로써 진정한 평화통일에 방해가 되고 있다. 스스로 역대 독재 정권과는 다른 문민정부임을 내세우고 있는 현정부라면, 우리나라의 참된 민주화를 위해 이 악법을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하는 것이 어떨까?

▶ 추천도서 Ⅰ

책이름
저자
출판사
성서 입문  C. 베스터만 한국 신학 연구소
이스라엘 역사 H.J. 군네백 한국 신학 연구소
구약성서 개론  박대선 외 대한 기독교 서회
신약성서 개론  안병무 외 대한 기독교 서회
역사와 증언 안병무 현대 신서
예수의 행태  아라이 현대 신서
현대 신학자 20 기독교 서회 대한 기독교 서회
새로운 존재 폴 틸리히 대한 기독교 서회
성서의 실존주의적 이해 볼트만 현대 신서 
살아계신 하나님  H. 오토 현대 신서
그리스도냐 프로메테우스냐 로흐만 현대 신서
자아확립  문동환 현대 신서
신에게 솔직히 J. 로빈슨 대한 기독교 서회
성서와 역사의식 김정준 평민서당
나와 너 마르틴 부버 현대 사상사
이스라엘 역사와 종교 H. 오토 한국 신학 연구소
현대의 신학사상 김광식 대한 기독교 서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볼트만 한국 신학 연구소
예수와 흑인 혁명 제임스 콘 청사
눌린자의 하나님 제임스 콘 이대 출판부
희망의 신학 볼트만 현대 사상사
신의 혁명과 인간의 책임 하아비 콕스 대한 기독교 서회
세속 도시  하아비 콕스 대한 기독교 서회
바보제  하아비 콕스 현대 사상사
저 낮은 곳을 향하여 한완상 전망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서인석 분도 출판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산타아나 대화신서
민중 신학 문희석 대한 기독교 서회
해방 신학 구티에레스 분도 출판사
전환 시대의 신학 서남동 한국 신학 연구소
현대역사적 예수 논고 볼트만 외 복음주의 신학 총서
해방자 예수  안병무 현대 사상사
정의의 예언자  김정준 한국 신학 연구소
하느님의 정의와 분노 서인석 분도 출판사
한국 역사 속의 기독교 문희석 N.C.C.K.
무엇에 따르고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디트리히 백범 연구소
옥중 서한 본 회퍼 대한 기독교 서회
나를 따르라 본 회퍼 대한 기독교 서회
본 회퍼의 사상 마르틴 말티
본 회퍼의 사회 윤리 볼트만 복음주의 신학 총서
침묵 김윤성 역 성바오로 출판사
순교자  김은국 시사 영어사
조직 신학 폴 틸리히 성광 문화사
무신론자를 위한 예수 M. 마호비치 한국 신학 연구소
기독교의 비종교화(본 회퍼론) 박봉랑  범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