某선배의 낡은 일기장

 

1992年 4月의 어느날

누가윤동주를저항시인이라했던가

그것은 스스로의 비겁을, 나약함을 가책하는

한 여린 지성인의 체념이다.

오늘에서야 나는 나의 무력, 비겁을 느낀다.

자유 그것은 용기있는 자가 쟁취 할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자유이기를 포기한 채

이 더러운 물의 흐름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최루탄, 화염병,

나는 그것을 외면한 채 도서관 빈 구석에 앉아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앞의 허상인 또하나의 글자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나도 대학에의 낭만과 끊임없는 학업에의 정열을 쏟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가치를 상실하고 목적을 잃은 일일 뿐이다.

나에게 그 가치와 목적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내 한몸을 바치고 싶다.

하지만 이것도 위선일 뿐이다.

그 가치와 목적은 바로 내자신이 이루는 것이다.

아. 나는 항시 그것으로 괴롭다.

나는 또 그 가치없는 책들을 봐야하는

그 무엇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위의 글은 어느날 문득 펴본 "철학사 강의"라는 책의 빈 공간에 흉한 글씨체로 남아있던 것이다.그때가 아마 4.19전의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월요일날의 시험과 그 날 있었던 스터디를 위해 나는 중앙도서관에 앉아 있었다.도서관 바로 앞 민주광장에서는 다음날인 4.19를 기념하기 위한 집회가 있었다.물론 커다란 구호와 소위 데모가를 앞세워서 말이다.

당시에는 매주 토요일 홍규형의 지도아래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스터디가 있었는데 "철학 에세이"와"경제학 기초 이론"이라는 당시의 소위 기본 교양 도서를 끝내고 "철학사 강의"(유물론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다룬 책)라는 책으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그리고 당일날은 4.19특집 세미나가 있었고 우리 1학년애들 몇명이 발췌를 해야 했다.물론 상당한 양의 자료를 홍규형이 前週에 준비해 주었었다.도서관에서 그 자료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또 밖에서의 그 함성을 들으면서 어찌 그리 나 자신이 초라해 지는지 몰랐다.

정말 나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를 어떻게 나의 신과 연관시켜야 하는지.. 화염병을 들고 강의실로 잠시 피신한 과친구를 보고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말을 해야하는지..정말 혼돈이었고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의 마지막에 있던 で서울대 선언문と을 읽고서는 나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그리고 위의 글을 써 내려갔었다.

긴 칠흑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김 주열의 참사를 보라.

그것은 가식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벌거벗은

나상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협과 폭력으로써

우리를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할 학구의 양심을 느낀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추하에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서울대 선언문----

그리고 세미나를 위해 교회로 향했다.물론 그 길속에서 수 많은 검문을 받아야 했다.

꿀릴 것 하나 없는데 어찌 그리 겁이 났는지..

또 얼마나 화가 나는지.. 이것이 정녕 자유의 박탈인가 싶었다.

작년이었을 게다.춘계 M.T의 후발대로 온 성필이 형.기도회 때의 그 기도를 잊을 수없다. 당시는 강경대,김귀정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분신등의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을 때이다.물론 그 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 학교 정문앞 철길위에서 한 사람이 분신으로 숨졌고 성필이 형이 그것을 목격한 것이다.

당시에 죽은 1학년의 한 학우가 있다.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어느 날(죽은 지 일주일도 안 지난) 과친구와 술을 먹던중 그 친구의 서클 친구를 만나 같이 마신 적이 있다.무척 초췌해 보였고 약간은 초탈해 보였다.나중에 친구에게 들어보니 그 죽은 학우의 형이었다 한다.

사실 내가 이런 얘기들을 꺼낼 자격은 없다.지금 생각해도 나는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의 대표적 경우였다.물론 고민은 많이 했지만 말이다.다만 위의 첫글을 어느날 우연히 읽고 나도 저런 적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가끔 어느 친구와 술을 마시며 90학번을 무신념의 학번이라 정의 내릴 때가 있다. 선배와 선배다움에 대한 향수 그러나 부족하고 헛점 투성이일수 밖에 없는 우리의 논리와 가치관이 우리를 자신 없게 만들고 우리가 속한 모든 곳을 방향성이 없는 곳으로 만든다.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느껴지는 의미의 쓸쓸함이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죄어온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에서 점점 이탈되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세상은 변해 간다.소련의 공산 정권이 붕괴되고 동구의 사회주의 노선이 무너진것도 알고 보면 얼마 전의 일인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필요할 때이다.대학부도 많이 변했고 변해 가고 있다.그러나 이 순간 나는 이 변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요즘의 대학부는 보수와 진보의 이상한 모순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듯 싶다.사회에서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이것에 따라 안정을 희구하고 사회의 변화를 원치 않는 계층을 보수적이라고 하고 사회의 변화를 바라고 잘못되고 모순된것을 좀 더 과감하게 뜯어고치고자 하는 층을 진보적이라고 한다.대학부도 과거에 보수적인 교회와 사회에 대해 진보적인 성향을 띄었고 이것은 어찌 보면 대학생으로써의 당연한 양상일지 모르겠다.그리고 우리도 그런 선배의 영향아래서 거기에 맞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고 또한 이것을 대학부에 계속 유지시키려 한다.하지만 요즘이 후배들은 너무나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 오히려 대학부내에서는 우리가 보수인것 같은 자기 착각에 빠지게 된다.하지만 불행이도 이것을 타개할 어떤 현실적 능력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우리의 인성대로 처신할 밖에.삼긴 대로 살리라!

대학부에서 느껴지는 지금의 무력감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답답하다.주님께 정말 갈구하고 싶다.온몸으로 기도하고 싶어진다. 결국 누구나 변하고 나도 변할 것이다.사회도 나의 이기심도 나의 변화를 요구한다.주님의 가르침을 향한 나의 노력도 희미해짐을 느낀다.판도라의 상자에서 였나? 저기 멀리서 희망이라는 빛이 나의 졸린 시야에 잠시 들어왔다 다시 사라져 간다.나의 수족은 그것을 잡으려는 듯 잠시 움칠하다 이내 힘을 잃는다.나의 눈도 점점 감기워져 간다.서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