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치러지는 농활은 한마디로 농촌 선교 봉사 활동이다. 5월부터 시작하여 대학부의  온 역량이 발휘되는 이 농활은 정말 많은 사람에게 무한한 감정들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농활에 대한 표상은 남아있다.

1990년 여름의 강원도 문암으로의 농활. 모두의 표정속에 다부진 결의가 꿈틀 거린다. 나에겐 첫번째 농활이며 선배의 꾸중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나를 무던히도 울게 만들었었다. 욱래, 종서는 미국에서 유학, 취업중이다. 그들이 보고 싶다. 같은 장소에서의 사진. 마을 잔치 준비 중에 찍은 사진이다. 항상 농활의 마지막 날 벌였던 마을 잔치에는 마을의 거의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한데 모였고 둥실거리는 풍월속에 우리는 진짜 하나임을 느꼈었다. 언제 다시 그런 기분을 느끼리오..

1991년의 충주 농활에서 찍은 사진. 예배당의 벽에는 어린이 성경 학교에 쓰인 그림들이 붙어 있다. 모두의 얼굴 속에 평화가 깃들어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가슴속에서 지나가고 있을까... 모두에게 고마움을 느낀 농활이다. 내가 그 나이에 농활 준비 위원장 이라는 직책을 가졌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는다. 그럴 자격이라도 있는 것인지. 지금은.. 농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항상 광화문의 거리는 어둡고, 네온사인과 크나큰 전광판의 빛 만이 광화문을 비칠 뿐이다. 광화문 뒷골목에는 항상 우리의 단골 가게들이 있었다. 그날도 농활에서의 지친 감성을 이끌고 약간의 고기와 냉면으로 요기를 채운다. 그래도 미소짓는 아이들의 표정이 선배들을 보람차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