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年 봄 ~ 2001年 겨울

 

 

 

 

 

 

 

1996年 봄 ~ 2001年 겨울

 

 

 

 

 

 

 

1996年 봄 ~ 2001年 겨울

 

무선사업부 무선개발팀 전문기술그룹은 1995년 가을.. 미국에 계시던 박상근 이사(당시)님이 삼성전자 무선개발팀으로 스카우트 되어 오시면서 처음 결성되었다.

총 인원이 100명 정도에 불과하던 당시 무선개발팀에서의 처음 그룹 구성은 러시아 연구 인력과 다른 그룹에서 차출해 온 사람들로 구성하였는데, RF Part 10명 정도와 Digital Part 2명으로 출발했다. (하동인 수석, 고형 책임, 박정규 책임, 김재호 책임, 진서용 과장, 옥광만 책임, 구딜레프, 크릴로프, 강해숙 씨 등)

1996년 처음으로 신입 사원을 받았는데, 처음 배치 받은 신입 사원이 바로 36기 임도현 책임(It's me) 그 이후로 다수의 36기 동기들이 배치되어 기흥을 찾았다. (정인오 책임, 신장기 책임, 전기상 책임 등, 이후 김성중 책임은 97년에 부서 전배로 같은 부서) 그 외에 정말 다수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에)

그 이후 37기(김세형 책임, 석원규 책임, 박성복 책임 등), 38기(오정석 책임, 이병용 책임, 조동준 등), 39기(오혜원 책임 등), 40기, 41기의 신입 사원을 받았고.. 그 와중에 김민구 수석, 김덕환 선배 등이 타부서에서 왔고.. 이스라엘 파견 인력의 전배 복귀(한충석 책임 등), 영국 파견 인력의 전배 복귀(여권 수석, 이상봉 수석, 박정훈 수석 등), IMF 이후의 Network 사업부에서의 일부 인력 전배(강준규 책임, 강진규 책임), 타 회사로 부터의 신규 영입, 박사 학위 후 입사 인력(이경하 수석, 변준호 수석) 등으로 그룹의 인원은 나날이 늘어났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통신연구소로 10여명의 동료가 천경준 연구 소장님 부임으로 전배 가는 헤어짐(김민구 수석, 옥광만 책임, 황종윤 책임, 김세형 책임, 석원규 책임, 한충석 책임, 이후 이경하 수석 등)과 DBDM TF 구성으로 타 부서 전배 차출, 다시 팀 복귀, 벤처 열풍기의 전직.. 양산 부서로의 일부 인력 전배... 등등등..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이 시기에 있었다.

2000년 7월에.. 무선개발팀 전문기술그룹 인원 전원이 무선사에서 통신연구소로 소속을 바꿔 선행단말파트란 이름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 하였다. 그 이후로도 일부 인력이 다시 무선사로 돌아가는 변화를 겪게 되었지만, 기흥에서의 회사 생활은 모두가 추억하듯, 그렇게 인간적이고 평화로웠다.

개인적으로는 2001년 봄.. 서울에서 수지로 홀로 이사 오며 독립 생활이 시작되었고 구형 소나타를 몰고 수지에서 기흥으로 출퇴근 하며 41기 후배들과 조우하던 시절.. 그리고 여름에 드디어 산타페를 구입하여 전원 생활(?)을 만끽하던 그 시절이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기흥 주변의 많은 오두막 식당에서 먹던 그 선선함 속의 된장찌개와.. 등심 구이 향기.. 2001년의 봄여름가을은 내 회사 생활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일 것이다.

드디어 2001년 겨울..
정보통신총괄의 많은 조직(기흥 무선개발/통신연, 분당 통신연 등)들이 수원 IT 센터(R3)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 한다. 기흥 사무실의 짐들을 수원으로 옮기던 그 겨울의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을 맴돈다. 커다란 현대적 건물의 이 곳이 참으로 낯설게만 느껴졌었고.. 모두들 기흥 시절을 그리워 했다.. 한동안..

이것이 1996년에서 2001년까지의 6年이다.
<추억의 사진첩#1>